1950년대는 우리 미술사에서 '한국현대미술'의 기점으로 설정되어있지만, 실상은 한국 근대미술이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이행과정에서 자생적 의지보다는 서양화단에 종속된 오래적 영향에 의한 한계를 가졌던 과도기였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이종우, 박득순, 도상봉, 이병규,이마동,김응진,황술조 등으로 이루어진 동미회가 계몽적 신미술운동 그룹을 표방하며 등장했지만 앞선 생각과 사라진 민족문화를 일으키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어서 1950년대에 유입된 서구 아방가르드의 영향으로 모더니즘 계열이 태동하면서 국내 미술화단에서도 새로운 경향의 추상미술을 표방하는 다수의 현대미술 그룹이 출현하고 한국미술의 분위기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균형이 기운다. 이 흐름이 일본 동경미술학교의 유학생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에 몇몇 작가들은 친일 화가로 지탄받기도 했으며 일본의 속박이 싫어서 절필하는 화가들이 속출하는 등 국내 화단은 한국성 정립에 대한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된다.
혼란한 한국화단에 불어닥친 이런 급작스런 서구화 물결은 한국의 정통적 화법론을 지켜나가던 작가나 사실계열작가들에게 불안감을 고조시켰고 한국적인 화화 양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개인 창작열에만 빠져있던 리얼리즘 계열의 의식있는 작가들이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당시 덕수궁 미술관앞 오래된 나무그늘 아래서 여러 작가들이 한국화단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종우(초대회장)선생이 우리도 서로의 힘을 나눌 수 있고 또 미래사실구 미술의 발전을 생각하며 "사실작가회"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그 자리에 있던 이병규 (초대부회장)선생이 "나무그늘을 벗하여 앉았으니 목우회라고 합시다"라는 말이 바로 반세기를 이어온 <목우회>의 탄생이 되었다.
목우회의 탄생
동미회, 백만회, 목일회(牧日會- ㅡ후 牧時會)같은 모임을 통해 친목을 유지하며 당시의 힘든 미술계를 견뎌내던 이종우, 도상봉, 손응성, 이종무, 최덕휴,이병규,박득순, 심형구,박희만,김인승,박상옥,이동훈,김종하,김형구,임직순 등 서양화 1세대작가들이 의기투합하기에 이른다.
그당시 덕수궁 미술관앞 오래된 나무그늘 아래서 여러 작가들이 한국화단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종우(초대회장)선생이 우리도 서로의 힘을 나눌 수 있고 또 미래사실구 미술의 발전을 생각하며 "사실작가회"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그 자리에 있던 이병규 (초대부회장)선생이 "나무그늘을 벗하여 앉았으니 목우회라고 합시다"라는 말이 바로 반세기를 이어온 <목우회>의 탄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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